통합진보당 당권파의 전근대적-반민주적 패권주의
통합진보당의 지난 5월 4일 오후부터 20여 시간 지속된 전국중앙위원회를 생중계로 지켜본 사람이라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위기 이전에 통합진보당의 민주주의가 위기가 지금 우선이라는 사실에 대부분 동감할 수 있을 것이다. 관점과 이해에 따라 비례선거 투표 부정 의혹에 대한 조사 결과서에 대한 입장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적어도 이정희 의원이 보여준 독단적, 편파적, 당파적 회의 운영과 소위 당권파 참관인들이 보여준 폭력적인 언행과 행동들은 그들이 설사 억울한 상황에 처한 것이라는 가정 하에서도 정당화될 수 만은 없는, 그들이 비난하던 ‘그 사람들’의 모습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사실 지금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선거에서의 부정 혹은 의혹에 대해 대다수 진보 진영이 소위 당권파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이유에는 그동안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일부 당내 세력의 전근대적인 패권주의에 대한 ‘전과(前科)’에 근거한 측면이 없지 않다. 당시 기성 언론에는 잘 회자되지 않았지만 그 유명한 민주노동당 용산지구당 사건에서부터 시작해서,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등 소위 PD 진영의 탈당과 진보신당 창당으로 이어지는 흐름에서 비판받아 마땅한 일들을 많이 해왔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부정 혹은 부실의 책임이 소위 경기동부연합으로 표현되는 당내 세력에게 집중되는 이유는 권한과 책임이 측면을 넘어 자업자득의 측면이 있다.
그런데 보수진영은 몰라도 적어도 진보진영에서는 그 비판의 칼날을 조금 더 세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겨레>, <경향> 의 경우에 이번 사태의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비판을 하면서 진보 진영에 스스로 관대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점에 박수를 보내지만, <조중동>과는 다르게 좀 더 세밀하게 비판을 해야하지 않았나 하는 2% 의 아쉬움이 남는다. 그 점은 바로 진보진영의 비판 지점이 “그들이 전근대적이고 반민주적인 세력이기 때문”이지 “그들이 NL이기 때문 혹은 주사파이기 때문”이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석기, 김재연이 대표하는 그 세력들을 단순히 NL 혹은 주사파라고 단순화하기에는 다소 무리도 있다.
NL = 주사파라는 단순화된 마녀사냥은 자제되어야
사회성격론-사회구성체론 논쟁과 같이 사회운동 차원이든, 사회과학 차원이든 치열한 논쟁을 경험했던 1980년대를 살아온 386세대(486세대?)에게는 1990년대~2000년대는 사실 역사의 시계가 멈춰버린 것 같은 진공의 역사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사회운동 차원에서, 그리고 사회과학 차원에서 수 많은 논쟁과 흐름들이 이어져왔고 발전해왔다. 단지 그동안 한국사회가 급격히 겪었던 여러가지 사회적 변화들로 인하여 386세대(486세대?)와 지금의 20대가 이 시기의 사회운동과 사회과학적 논쟁을 공유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겼는데, 문제는 지금 이러한 단절된 인식의 틈새가 비판의 칼날을 잘못 인도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1992년 대선이후 시작된 NL의 분화는 1990년대 중반부터 NL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두기 쉽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흐름이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사상적, 운동적 흐름은 과거 1980년대와는 달리 사회와 대학이 분리되어 각자 발전하는 양상을 겪게 된다. 특히 대학의 경우 당시 NL은 주류를 차지하고 있던 주사파의 시대 인식를 비판하며 NL 내부에서 철학적, 사회과학적 논쟁을 벌이며 상당한 분화를 겪게 되는데, 그 결과 기존 NL 주류 이외에 사람사랑1, 사람사랑2, 혁신계열, 노선대, 새벽 등으로 급속히 분화되고, 또 다른 일부는 21세기 연합 등 NL-PD 연합 성격으로 재편된다. (물론, 이 시기 PD도 대장정, 학생연대, 전학협, PM 등 지속적인 분화를 거듭한다.)
사실 지금 언론들에 의해 소위 ‘주사파’ 혹은 ‘경기동부연합’이라는 정체성이 붙여진 김재연만 해도 2000년대 초반 한국외대 총학생회를 이끌면서 한총련의 NL 주류의 주사파에 근거한 철학과 시대인식에 반기를 들고, 처음으로 의장선거 경선에 나섰던 NL 혁신계열이었다. 배경지식 없이 팩트와 상관없이 소설 창작에 열을 올리는 조중동 기자들이야 논외로 치더라도, 문제는 과거 NL-PD의 이분법에 익숙한 386세대(486세대?) 진보적인 학자들과 언론인들이 이러한 부분들을 간과한채 과거 진영 논리에 얽매여 무조건 NL = 주사파로 칭하며 이 부분으로 촛점을 옮겨 싸잡아 비판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진보 진영 전체가 실기하지 말아야 할 가치와 지향
이번 통합진보당에 대한 비판의 촛점은 우선 과거 민주노동당의 당권파라고 불리우는 일부 세력의 “전근대적이고 반민주적인 행태”에 맞추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그들의 당내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과 패권주의에 기반한 목적의 수단 정당화 논리가 진보라는 이름은 커녕 민주주의라는 이름에도 걸맞지 않음을 명확히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들을 지지하는 진성당원들의 의사만 제일 중요하고, 의석을 준 국민들에 대한 책임은 그 다음이라는 식의 논리가, 적어도 의회에서 대의정치를 하겠다는 공당으로서의 자세가 아님을 명백히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다만 적어도 진보진영의 비판 지점이 “그들이 전근대적이고 반민주적인 세력이기 때문”이지 “그들이 NL이기 때문 혹은 주사파이기 때문”이어서는 안된다. 보수진영에서는 그들이 NL이기 때문에 비판해도 된다. 전후 맥락을 잘 모르는 그들에게 NL은 모두 그냥 주사파일 수 있기 때문이다. 보수진영에서는 그들이 주사파이기 때문에 비판해도 된다. 그들의 관점에서는 사상의 자유보다 분단의 상황과 적국의 위험이 더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보진영은 달라야 한다. 설령 그들 중에 주사파가 있더라도 다른 생각의 공존을 인정하는 ‘사상적 자유’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진보진영이 함께 지켜야 할 가치와 지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히 거기에도 한계는 있다. 이러한 사상적 자유가 학생운동이나 사회운동 혹은 학문연구의 장에서는 폭넓게 인정받아야겠지만, 국민의 지지와 선택을 받아 의회에 진출해 대의정치를 하겠다는 경우에는 그들이 지향하는 가치와 철학을 분명히 가감없이 국민들에게 솔직히 밝히고 그 사실에 근거해 국민들의 지지와 심판을 받는 것이 당연하고 또 옳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지금 통합진보당 사태는 단순히 한 진보정당의 당내위기를 넘어서, 우리나라에서 진보진영이 반드시 해결해고 넘어가야 할 수 십년 동안 미루어 왔던 해묵은 과제의 성격이 크다. 이 과제를 함께 슬기롭게 해결해야 우리사회에서 진정한 진보의 미래가 열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 명심해야 한다.

